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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Dubrovnik)

by wizy 2022.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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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 남부 달마티아 지역의 아드리아 해와 인접하고 있는 도시이다. 흔히 아드리아해의 진주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답고 멋진 곳으로 지중해 최고 여행지로 꼽힌다.

도시의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되어 있으며 많은 문화재들이 가득 차 있다.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미드 ‘왕좌의 게임’의 주요 촬영지도로 활용되어서 더욱 인기를 끌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네움이 본토와 두브로브니크 사이에 있어서 월경지이지만 간단한 여권 검사만으로도 국경선을 자유롭게 넘을 수 있다. 오히려 자동차 여행을 하게 되면 짧은 시간 안에 출입국 도장이 여권에 여러 개 늘어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어 색다르다.

두브로브니크는 7세기에 에피다우름(Epidaurum) 피난민들이 섬에 정착하면서 ‘라우스(Laus)’라고 부르면서 건설되었다. 15세기까지 라구사(Ragusa, Rausa)는 라틴어로 불렸는데 암석을 의미하는 ‘Lausa’에서 왔다. 또한 반대쪽의 스르지(Srđ) 산 아래에는 크로아티아어로 떡갈나무를 뜻하는 ‘두브라야(dubrava)’에서 기원한 ‘두브로브니크’라는 정착지가 있다.
이 정착지를 슬라부족이 일구었고 12세기경에 섬과 해안 사이의 해협이 메워지며 정착지가 통합되었다. 이 때부터 비잔틴 제국의 보호를 받았고 제 4차 십자군 원정 이후 베니스의 통치를 받았다. 1358년에 자다르 평화협정에 따라 헝가리-크로아티아 왕국으로 합병되었지만 15-16세기에 절정을 이룰 정도로 발달한 실질적인 공화제 자유국가였다. 1667년 4월에 발생한 지진으로 공공건물이 대부분 붕괴되면서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이를 기점으로 도시 발전의 방향이 바뀐다.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편입되었고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추축국의 꼭두각시였다. 1991년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때 엄청난 포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수리 및 복원 작업으로 현재의 인기 관광지로 거듭났다.
인기 작가였던 버나드 쇼는 “진정한 낙원을 원한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라는 말을 남겼을 만큼 유럽인들이 선호하는 최고의 휴양지인 두브로브니크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살펴보자.

추천 경로

필레 문성벽 투어(2~3시간) – 오노프리오 분수 프란체스코 수도원 스트라둔 대로성 블라호 성당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렉터 궁전 스폰자 궁전 도미니코 수도원 스르지 산 전망대

주요 명소

▶ 필레 문(Pile Gate)

보통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를 여행할 때 시작점으로 인식되는 곳으로 1537년에 지어진 성문이다. 르네상스 형식의 아치 위에 도시 수호성인인 블라호 동상이 있다.
필레 문을 통과하면 두브로브니크의 유명한 보행자 통로인 스트라둔 대로를 만나게 된다.

▶ 오노프리오 분수(Large Onofrio Fountain)

필레 문(Pile Gate)을 들어서면 바로 만날 수 있는 분수로 두브로브니크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구시가지를 들어가는 입구에 있기 때문에 보통 만남의 장소로 활용된다.
1438년에 12km 정도 떨어진 샘에서 물을 끌어오려고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수에 장식되어 있는 조각품은 1667년 지진으로 크게 손상되고 현재는 식수를 떨어뜨리는 가면 조각상 16개만 남아 있다.
스트라둔 대로 끝의 루자 광장에 위치한 작은 오노프리오 분수도 있다.

두브로브니크 성벽(Walls of Dubrovnik)

두브로브니크 성벽은 약 2km에 걸쳐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다. 벽의 두께는 약 4~5m 정도로 바다 쪽이 훨씬 얇으며 높이는 최대 24m에 이른다. 12세기부터 17세기까지 건설 및 확장된 거대한 석회암 방어벽으로 도시를 보호하기 위한 포탑과 타워가 설치되어 있다. 중세 시대에 지어진 요새 중 규모가 큰 것 중 하나이다.

보통 관광객들은 성벽을 따라 걸으며 전망을 감상한다. 성벽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총 3개가 있는데 주로 필라 문 쪽을 이용한다. 성벽을 한 바퀴 도는데 대략 1~2시간 정도 걸리며 반짝이는 아드리아 해와 구시가지의 전망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좋다.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킹스 랜딩’ 도시의 촬영 장소이기도 하다.

프란체스코 수도원(Franciscan Monastery)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작은 형제회에 속한 대형 복합 단지이다. 이 단지에는 수도원과 성당 외에도 도서관, 약국, 박물관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약국은 1317년에 설립되었는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것이다.
도서관은 17세기에 건축되었으며 귀중한 고대 필사본을 비롯하여 1317년에 발행된 Friars Minor Pharmacy 등을 보유하고 있다.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1360년에 지어졌고 상부 회랑은 아치와 반원형 금고가 있는 르네상스 스타일이다. 스트라둔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내부 회랑은 녹색 식물로 가득차서 바쁜 거리와 대조를 보인다.

스트라둔(Stradun) 대로

공식적인 이름은 플라차(Placa) 거리로 불리며 13세기부터 두브로브니크의 중심지였다. 도로가 되기 전에는 수로로 이용되었다. 1667년에 있었던 대지진과 화재로 인해 스트라둔 거리에 있는 많은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이후 대대적인 재건축과 복원 작업을 통해 현재의 매력적인 모습을 다시 갖추게 되었다.
하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거리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며 구시가지를 북과 남으로 나누는 경계 역할을 한다. 다양한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어서 사람들을 구경하며 식사와 음료를 즐길 수 있다. 또한 많은 기념품점이 있어서 쇼핑을 하기에도 적당한 곳이다.

성 블라호 성당(Church of St. Blaise)

성 블라호 성당은 바로크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도시의 주요 명소 중 하나로 두브로브니크 시의 수호 성인인 Saint Blaise에게 헌정된 건물이다. Saint Blaise는 중세 슬라브인들의 이교도 신인 Veles와 동일시되며 예전 독립된 라구사 공화국의 수호자였다.
1667년 대지진으로 파괴된 로마네스크 중세 교회의 부지 위에 베네치아의 건축가인 마리노 그로펠리(Marino Gropelli)가 1715년에 지었다. 성당은 십자가 모양의 평면도를 가진 정사각형의 본당으로 되어 있으며 측면에 2개의 제단이 있고 중앙에 직사각형 큐폴라가 있다. 성당 정면의 모습은 4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서 있고 상단에는 반원형 박공과 마리노 그로펠리가 만든 조각상 3개가 있다. 3개의 조각상 중 가운데에 있는 것은 Saint Blaise를 나타낸 것이고 왼쪽와 오른쪽은 믿음과 희망을 의인화한 것이다.
스트라둔에 위치하고 방문하기 편하고 여름과 새해 등 많은 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

▶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Church of St. Ignatius)

이 성당이 유명해진 것은 예수회 계단(JESUIT STAIRCASE)때문이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세르세이 라니스터가 굴욕적으로 행진했던 ‘속죄의 길’이 바로 여기에서 촬영되었다. 이 계단은 교회 전면부와 도심을 연결하는데 로마 건축가 ‘Pietro Passalacqua’가 1738년에 만들었다.
계단은 바로크 양식으로 볼록-오목 형태로 지어졌으며 시각 효과가 더해져 상당히 우아한 느낌을 준다. 로마의 스페인 광장에서 트리니타 데이 몬티 교회로 이어지는 계단을 모방한 느낌을 준다.

두브로브니크 대성당(Cathedral of the Assumption of the Virgin Mary)

성모 승천 성당으로도 알려진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은 렉터 궁전 근처에 있으며 로마네스크 양식을 기반으로 7세기부터 12세기까지 여러 후속 건물이 더해져 세워졌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금고에 보관된 유물 관람에는 비용이 소모된다.
역시 1667년 대지진 때 크게 피해를 입었고 이 후 30년동안 이탈리아의 여러 유명한 건축가의 손을 거쳐 복구되었다. 현재의 모습은 두브로브니크 건축가 Ilija Katičić에 의해 1713년에 완성된 것으로 로마 바로크 양식을 유지하고 있다. 역시 1991년 전쟁 기간 때 포탄에 의해 손상되었지만 복구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정면에는 4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있으며 중앙 부분 상단에는 바로크 양식의 큰 창문과 성인의 동상이 있다.
11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많은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데 특히 금고에 보관 중인 도금된 성 블라호의 팔, 다리 등의 신체가 유명하다. 그 밖에 1552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성모 승천을 묘사하고 있는 제단과 이탈리아 및 달마티아 대가들의 그림도 볼 수 있다.

렉터 궁전(Rector’s Palace)

렉터 궁전은 고딕-르네상스 구조로 되어 있으며 정교하게 조각된 문자와 화려한 계단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많은 역사가와 건축 애호가에게 사랑받는 곳 중 하나이다. 1435년에 처음 설계되었으며 과거 두브로브니크가 독립 국가 시절인 라구사 공화국 때 총독 저택으로 중심지 역할을 했다.
건물 중앙에 있는 아름다운 중정과 객실들은 좋은 볼거리이며 5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도시의 문화, 역사와 관련된 수많은 유물 및 달마시안과 베네치아 예술가들의 회화를 전시하고 있다.
렉터 궁전은 1993년과 2002년에 발행된 크로아티아 50쿠나 지폐의 뒷면에도 등장하며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는 항구도시인 쿼스의 배경으로 사용되었다.

스폰자 궁전(Sponza Palace)

스폰자 궁전은 Divona라고도 하며 16세기에 만들어졌다. 이름은 빗물이 모이는 곳을 의미하는 라틴어 ‘spongia’에서 유래되었다. 안뜰이 있는 직사각형 건물은 1516년부터 1522년까지 Paskoje Miličević Mihov가 만들었으며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궁전은 세관, 보세 창고, 조폐국, 무기고, 재무부, 은행 및 학교를 포함하여 다양한 공공 기능을 수행하였다. 16세기에는 라구사 공화국의 문화 중심지였으며 1667년 지진에서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궁전 앞 루자 광장은 두브로브니크 여름 축제 개막식 장소로 사용되고 공연장으로도 이용된다.

도미니코 수도원(Dominican Monastery)


두브로브니크 성벽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자 문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동아드리아 해안에서 가장 큰 고딕양식 건축물로 1225년에 짓기 시작해서 15세기에 완공되었다. 건축 기간이 긴 만큼 여러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이 포함되어 있어 건축학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위치 상 바다와 도시를 바라보기 쉽기 때문에 도시 방어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종탑은 현재 도시의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회랑에는 14세기에 지어진 우물이 있는데 지금도 사용할 수 있다. 15세기와 16세기의 주요 예술가들의 작품이 있고 내부에는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다.

스르지 산((Mt Srđ))

두브로브니크 전체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스르지 산 정상이다. 산은 해발 412m 정도로 도보, 택시, 케이블카를 이용해서 접근할 수 있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수단은 케이블카로 약 10분이면 정상의 전망대까지 도착한다. 도보로 이동할 경우 천천히 걸으면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요즘은 우버를 활용한 택시를 이용하기도 한다.

스르지 산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주 뛰어난데 마치 바다 위에 두브로브니크 도시가 떠 있는 느낌을 준다. 두브로브니크의 건물 지붕이 주황색이어서 푸른 바다와 색이 대비되어 더 강렬한 느낌을 준다.

스르지 산 전망대에서는 2개의 테라스가 있고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가 있다. 또한 나폴레옹이 세운 것으로 알려진 흰색 대형 십자가도 볼거리이다.

로브리예나츠 요새(Fort Lovrijenac)

두브로브니크의 지브롤터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서쪽 성벽 밖에 있는 해발 37m의 높이의 요새이자 극장이다. 베네치아 통치에 저항하는 연극으로 유명하며 바다와 육지를 통해 각각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다.
11세기 초에 베네치아인들이 현재의 위치에 큰 성채를 만들 계획이었고 속국인 두브로브니크를 관리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은 이 의도를 간파하고 접근이 어려운 요새를 만들어 베네치아를 방어했다. 뒤늦게 건설 자재를 싣고 도착한 베네치아 함대는 어쩔 수 없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현재 이 곳은 여름 축제 기간 동안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공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로크룸 섬(Lokrum Island)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약 600미터 떨어진 북서쪽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은 형태의 섬이다. 구시가지 항구에서 페리로 10분 정도 걸린다.
섬의 가장 높은 지점에는 나폴레옹이 크로아티아를 점령하는 동안 프랑스인이 지은 포트 로얄 성이 있다. 이 성은 나중에 오스트리아인에 의해 ‘막시밀리안 타워’로 불리게 된다.
섬은 전체적으로 숲이 우거져 있으며 한적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몇 개의 조약돌 해변도 있어서 휴식 및 수영을 즐기기에도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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